1. 서론
안녕하세요, DLsite의 다함께번역에서 C. crenata라는 이름으로 활동 중인 변방의 아마추어 번역러입니다.
미리 스펙부터 쓰자면 중3부터 일본어 독학을 시작해서 일본어과에 들어가고서 JLPT N1(독해 만점), JPT 890을 달성한 후 올해 4월부터 교환학생으로서 일본에 온 상태입니다.
제목을 보시면 이미 아시겠지만, 이 글은 2024년 2월 상순부터 다함께번역을 시작하고 동년 11월에 (심사통과작 기준) 100 작품을 달성한 기념으로 쓰는 개인적인 소감입니다.
모든 다함께번역의 번역러들 입장을 대변하는 것은 아니며, 여러 요인상 객관적이지 못하니 참고로만 봐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또한, 저는 전연령 작품의 일한 번역만 하고 있으므로 그외 번역의 이야기는 없으니 이 점 주의해 주시길 바랍니다.
2. 본론
2-1. 다함께번역이란?
우선 다함께번역에 대해 간단하게 설명하겠습니다.
다함께번역은 DLsite에서 제공하는 일종의 유저 번역 시스템으로, 정식으로 작품을 번역하고 작품 가격의 20~80%만큼 수익을 분배받을 수 있다는 점이 특징입니다. 물론 분배받을 수익을 0%로 설정하면 자원봉사도 가능하고요.
공식 홈페이지 만화에서 강조하는 것처럼, 원작자에게 아무런 득도 없고 떳떳하지 못한 불법 번역보다 훨씬 더 나은 선택지죠.
저는 장래에 정식으로 번역가로서 활동하려고 할 때 제출할 포트폴리오로 쓸 겸, 제 번역이 정식으로 판매될 가치가 있는지를 알아보기 위해 올해 2월에 다함께번역을 시작하게 됐습니다. 여태까지 한 번역은 게임 스토리 비공식 번역처럼 포트폴리오라고 할 수 없는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이력서란에 '아×돌마스터 스토리 60편 이상 비공식 번역'이라 써봤자 실력도 알 수 없고… 그뭔씹이잖아요?
번역자 신청을 한 다음에 번역자로서 활동할 경우, 대체로 이하의 과정을 거칩니다.
1. 번역 허가가 내려진 1차창작 만화/ASMR을 구매한다
2. 해당 작품의 번역을 신청한다
3. 번역 신청 날짜로부터 60일 안에 번역하고 제출한다
4. 최소 1~2주에서 최대 1달 후, 심사 통과/탈락 여부가 결정됨
└ 4-1. 통과된 경우: 2차 심사 후 약 1~2주의 판매 준비 기간을 거친 뒤에 판매 예정일이 결정됨, 5번으로
└ 4-2. 탈락된 경우: 심사자의 코멘트에 따라서 번역을 수정하고 다시 제출, 4번으로
(※ 탈락이 4번 이상이 될 경우 번역 신청한 모든 작품이 취소되는 패널티 有)
(※ 심사 통과/탈락 등의 연락은 등록한 이메일에 메일로 전달됨)
5. 판매 개시
참고로 번역할 작품을 계속 자비로 살 필요는 없습니다, 아무도 번역하지 않은 작품을 번역하고 무사히 판매할 때마다 한 작품 당 1,500엔까지 100% 할인되는 쿠폰을 한 장씩 받을 수 있으니까요!(자세한 것은 이 링크로)
이 쿠폰은 보면 볼수록 DLsite의 다함께번역을 활성화시키고자 하는 의지가 느껴집니다, 실제로 저도 여태껏 이 쿠폰 덕을 많이 봤으니까요.
2-2. 장단점
장점 ①: 아무런 자격 없이도 번역이 가능하다
서두에서 말한 점이기도 합니다.
정식으로 번역가로서 일하는 게 아니라 커미션 같이 비공식적으로 일한다 해도 자격 한 두 가지 쯤은 기재해야 하기 마련입니다, 당연히 소비자는 제 돈을 주고 번역을 맡길 사람의 실력이 어떤지 정도는 알아야 하니까요.
하지만 다함께번역에서는 번역자 신청을 하기만 하면 번역이 가능함과 동시에 심사 시스템으로 일정 이상의 퀄리티를 보장합니다.
이뿐만이 아니라 의역을 넘어서 원문과 동떨어진 번역이나 기계 번역을 반려한다는 점도 개인적으로 높게 사고 싶습니다. 그런 번역은 원작자에게도 구매자에게도 무례한 일이니까요.
장점 ②: 아무 장비 없이 식질이 가능하다
흔히 만화의 말풍선이나 배경을 지운 뒤에 텍스트를 입력하는 것을 '식질'이라고 하는데, 편의상 ASMR에서 자막을 다는 일 또한 그렇게 칭하도록 하겠습니다.
다함께번역은 번역자 등록을 하면 자체적으로 Mantra(만화), 음성번역툴(ASMR)을 제공하므로 따로 번역툴을 구매할 필요가 없습니다. 게다가 AI가 자동 리터칭, 자동 음성 인식 자막을 제공해서 보다 편하게 번역할 수 있고요!
그렇지만 역시나 번역하다보면 저 두 가지 툴 이외에도 필요한 것이 생기는데… 그 점은 단점 ②에서 후술하겠습니다.
장점 ③: 다양한 작품을 만날 수 있고, 원작자를 지원할 수 있다
흔히 불법 번역은 그 작품의 홍보가 되니까 용인해줘도 된다는 의견이 많이 보이는데,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그 이유를 전부 말하자면 끝이 없기 때문에 생략합니다).
그렇다고 해도 원작자한테 일일이 정식으로 허락을 구하는 것은 번거롭기도 하고, 정식으로 그 작품과 계약해서 번역한다는 것은 개인에게 어려운 일이 맞긴 합니다.
그 점에서 다함께번역은 그 점에서 해결책이 됩니다. 원작자가 번역 허가를 내린 1차창작물만 작업할 수 있으며, 그렇게 허가가 내려진 작품들 중에서 번역할 것을 찾고, 그걸 번역함으로써 그 작품을 홍보함과 동시에 접근성을 높이는 일도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이유 덕에 저는 DLsite의 다함께번역이 매우 좋은 시스템이라고 진심으로 생각합니다, 간편하게 정식으로 번역을 하면서 수익도 받을 수 있는 좋은 장소를 마련해 주고 있으니까요.
물론 여러 면에서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겠지만, 다른 대형 동인 사이트들도 이런 시스템을 제공해줬으면 하는 마음도 있습니다.
단점 ①: 심사에 허술한 점이 있다
"장점 ①에서 심사 덕에 퀄리티가 보장된다고 했는데 이게 무슨 소리야?"라고 생각하실 수 있습니다만… 부끄럽게도 현재 판매 중인 제 번역작 중에서도 리터칭 후 텍스트를 넣지 않은 식질 미스, 번역 통일이 안 된 부분, 맞춤법 오류 등의 자잘한 실수가 있습니다. 심지어 판매되는 만화 페이지가 누락된 오류도 있어서 제가 직접 본 뒤에 문의를 넣어서 고친 적도 있고요.
자막 싱크가 맞지 않거나 전체적인 번역 문제처럼 큰 문제는 바로 반려되어서 코멘트로 지적되지만, 어째선지 저 실수들은 두 차례 심사를 마친 뒤에도 지적되거나 고쳐지지 않았습니다.
이 점은 다함께번역의 번역자보다도 그 번역작을 구매해서 보는 분께 하는 말에 가깝지만, 다함께번역의 심사자도 인간이다 보니까 어느 정도 놓친 부분이 있다는 점은 감안해야 할 것 같습니다…ㅠ.
단점 ②: 결국 번역하다보면 외부 툴이 필요해진다
장점 ②에서 나온 Mantra와 음성번역툴에도 결국 한계가 있습니다.
기본적으로 제공하는 툴치고는 좋지만, 어디까지나 기본적으로 제공하는 툴치고는 좋은 수준입니다.
만화의 경우, AI의 자동 리터칭과 Mantra 내 텍스트 입력만으로는 퀄리티 높은 식질이 불가능한 작품들이 많다보니까(ex. 투명 말풍선, 스크린톤처럼 패턴이 있는 배경 등) 따로 "자신의 환경에서 번역 신청"을 해서 소지하고 있는 타블렛과 클립스튜디오로 자체적인 리터칭을 한 뒤에 Mantra로 텍스트를 입력하는 방식을 고수하고 있습니다.
그래도 만화의 경우, 식질 퀄리티를 포기하거나 식질 난이도가 높지 않은 작품을 번역한다면 딱히 필수는 아니겠네요.
그렇지만 ASMR은 거의 준필수적입니다, 식질 노가다를 하고 싶지 않다면요.
왜냐하면 ASMR은 작품에 따라 모든 트랙을 이어붙인 full 음원이나 (SE 제거 등의 이유로) 분명 음성은 같은데 미묘하게 싱크가 어긋난 트랙이 있는 경우가 있기 때문입니다.
다함께 번역의 음성번역툴은 내용이 같지만 형식이 WAV와 mp3로 다를 뿐인 트랙 자막 대응을 위해 자막을 그대로 다른 트랙에 옮기는 기능은 포함되어 있지만, 자막 싱크를 조정하거나 각 트랙 자막을 이어붙이는 기능은 없습니다.
이 점이 가장 문제라서 저는 Subtitle Edit이나 SRT Time Shift 같은 외부 툴을 따로 이용해서 자막 싱크를 조정하거나 자막들을 이어붙이고 있습니다. 이게 없으면 자막을 다시 일일이 달거나 해야 할 정도로 귀찮다 보니 추후 업데이트로 관련 기능이 추가됐으면 합니다….
단점 ③: 번역이 말없이 수정되는 경우가 있다
이건 사람에 따라 단점일 수도, 단점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미리 운영측에서 고지한 사항이기도 하고요.
정식으로 번역을 하거나 커미션처럼 개인이 운영할 경우에는 상대 측에서 해당 번역의 수정을 요청하는 이유를 제대로 듣고, 어떻게 고치면 좋을지 제대로 협의가 가능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다함께번역은 그런 과정을 가지기가 어렵습니다. 심사자에 따라 피드백의 질과 방식도 크게 다르기 때문에 번역이 어떻게 수정될지는 거의 알 수 없는 만큼, 통과되고 나서 판매작을 보니까 말도없이 번역이 여럿 수정된 경우도 대다수입니다.
저는 수정된 번역이 제 번역보다 더 자연스럽고 좋은 번역인 경우가 많아서 대부분 수긍했지만, 이런 부분에서 민감한 번역자라면 불쾌하게 느낄 수도 있습니다. 어디까지나 판단은 여러분의 몫에 맡기겠습니다.
2-3. 수익
자, 이제 가장 궁금하실 수익을 설명하겠습니다.
솔직히 말해서 저는 수익보다 "내 마음에 들거나 흥미가 가는 작품을 번역하고 싶다!"라는 신조가 강하기에 애당초 수익을 기대하지는 않았습니다. 관심도 없는데 수익이 많을 것 같다는 이유만으로 꾸역꾸역 번역하는 건 괴롭잖아요?
이것이 2024년 2월 5일 ~ 2024년 10월 31일까지의 매상입니다.
판매수 변동이 심한 데다 2월달에는 막 시작한 상태여서 매상이 현저히 적은 걸 고려해야겠지만, 대략 한 달 수익은 2~3천엔 정도로 보이네요.
당연히 수입 변동 요인은 많은 만큼 불안정합니다. 저는 아예 몇몇 트친들에게 비계로 얘기한 것 빼고는 아무런 홍보도 하지 않았기 때문에 DLsite가 작품 할인 캠페인을 시작하거나, 작품이 새로 나와서 사이트 메인에 떠서 노출이 많이 됐을 때가 그나마 가장 많이 팔리는 것 같네요. 그것 말고는 정말 운에 달렸습니다….
이 금액을 비싸다고 생각할지, 적다고 생각할지는 사람에 따라 다르겠지만 저는 "거의 공짜로 작품을 사서 짬짬이 번역한 수익치고는 높지만, 좀 더 벌고 싶다면 아예 번역 커미션을 하는 게 낫겠다" 정도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커미션은 다함께번역의 60일 제한보다 더 기간이 촉박할 테고, 스펙을 제시할 필요가 있는 데다 자체적으로 번역 툴을 구해야 한다는 점에서 난이도나 필요한 비용이 더 높겠죠.
이건 앞서 말했듯이 순전히 취향만으로 선정한 전연령 작품들만을 번역한 결과이기 때문에 번역자마다 차이가 몹시 클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제가 보기에 다함께번역은 부업 정도의 포지션으로 삼는 게 가장 좋다고 생각합니다.
3. 결론
3줄 요약
1. 아무 자격 없이 정식으로 번역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다함께번역은 좋은 시스템이라고 생각함
2. 그렇지만 별도의 툴이 필요하거나 심사가 좀 허술한 점 등의 단점은 있음
3. 수익은 기대하지 말고 어디까지나 부업 정도로 삼는 걸 추천
이상이 제가 약 8~9개월동안 다함께번역에서 번역자로서 활동한 소감입니다.
이 글을 통해서 다함께번역이란 시스템의 존재나 그에 대한 정보를 알아가는 분이 계신다면 기쁘겠습니다!
그리고 이전 목표치였던 100 작품을 넘겼지만 다함께번역은 계속하려고 합니다.
앞서 말한 여러 단점이 있어도, 큰 수익을 기대할 수 없어도, 정식으로 번역하면서 새로운 작품들을 만날 수 있다는 건 즐거우니까요!
이런 기회를 마련해 준 DLsite 님께 감사의 삼보일배를 올리면서 이만 글을 마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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